내 이름은 카시스고 나는 놀이공원에서 일한다.
원래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일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방학 때 떠날 여행을 위해 가볍게 돈을 벌 생각으로 일자리를 구했다. 그런데 계획이 꼬여버렸다.
내가 맡은 업무는 아주, 아주 단순하지 않았다. 놀이공원 서부 테마―어쩌면 서부 테마만이 아닌, 놀이공원 전체―를 돌아다니고 있을 '그'를 돌보는 것이었다. 돌본다는 말은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자아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는 내가 돌볼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물론 다른 비연기자들 역시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독보적이었다. 놀이공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자신의 계산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가끔 그의 눈을 들여다볼 때면 나 역시 하나의 체스 말로서 판 위에 올라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돌보기보다는 그를 감시하고 최대한 저지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보고 '한 사람을 지켜보는 일 정도면 완전 쉬운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건 완전히 착각이다. 지난번 매니저가 나에게 준 종이의 두 번째 사항을 기억해보라.
2. 총성이 울릴 시 모든 직원은 협조할 것.
모든 직원이 협조해야 한다는 것은 그가 꽤 만만치 않고 상당히 위험한 상대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얼마 전 총성이 울려 퍼졌다.
해가 꺼질 때쯤이었다.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자 놀이공원을 순찰하던 매니저의 안색이 창백해졌던 게 기억난다. 그는 즉시 직원 전원을 집합시켰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매니저는 우선 내게 책임을 물었다. '그'를 감시하고 저지하는 것이 내 직무니 당연한 일이다만 출근을 해도 그를 만날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도 오늘 종일 그를 보지 못했는데요."
다시 생각해보니 상당히 무책임하게 들린다. 책임감이 강하다고 자부해놓고 이렇게 말한 것이 제법 웃기다. 그렇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그러자 매니저가 신경질적인 투로 말했다.
"그러니까 그 녀석을 찾아서 막는 게 네 역할이잖아! 네가 아니면 누가 하겠냐고!"
솔직히 인정한다. 휴게실에서 바질 토마토 샌드위치를 먹느라 그를 예정보다 늦게 찾아 나섰다는 것을. 하지만 한편으로 억울했다. 그건 식사의 일환으로 어쩔 수 없이 했던 행동이고, 그 이후로는 나도 그를 만나러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런데도 그의 검은 연기는 끝자락조차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첫날에도 그가 먼저 나를 찾아오지 않았는가. 나는 이 일이 나와 아주 적합하긴 한 거냐며 작게 투덜거렸다.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을 들은건지 매니저는 바로 대꾸했다.
"그래, 카시스. 너는 할 수 있어. 너니까 가능한 거라고."
그러면서 너이니 당연히 적합하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나에게 이 일을 맡기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시간을 더 끌 여유가 없었다.
"지금부터 불꽃놀이 시작이야."
목을 가다듬은 매니저가 말했다. 그러고는 직원 모두에게 지령을 내렸다. 놀이공원 내 각 구역에 있는 손님들을 카페와 식당 내부로 안내하고 그들에게 서비스 음료를 제공하라는 것이었다. 마치 놀이공원 행사의 일부인 것처럼 말이다.
주어진 시간은 1시간이었다. 1시간이 지나면 손해를 감당하기 힘들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동안 일반 직원들은 손님들을 안내하고, 연기자들은 각자의 비연기자들을 일시적으로 우리에 가둬 놓아야 했다. 나는 무얼 해야 했냐고?
"카시스, 넌 그놈을 보는 순간 보고해. 1시간으로 이 상황이 끝나지 않는다면 그놈이 있는 곳을 막든 잡아 넣든 해야 하니까."
그야 당연히 '그'를 찾아 제지해야 했다. 1시간 이내에.
실은 실탄이 아닌 공포탄일 것으로 생각해서인지 해당 조항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보면 왜 그리 섣불리 판단했나 싶다. 총성이 울린다고 전 직원이 이렇게 움직이고 손님들이 통제되어야 하나? 심지어 비연기자들까지 우리에 가둬놓는다고? 수많은 물음과 함께 그를 찾아 나서려는 순간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첫날에 날 습격했던 투스를 맡은 연기자, 켈리였다. (여담이지만 투스는 알고 보면 덩치만 컸을 뿐인 북슬북슬한 털의 소유자다. 물론 내 머리를 한 번에 집어삼키려고 했었지만.)
"안녕, 카시스라고 들었어. 우리 인사가 많이 늦었지?"
"어어, 켈리 맞지?"
얼빠진 되물음에서 조급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켈리 역시 지금은 한가로이 인사할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지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맞아, 알고 있었구나. 시간이 없으니 제대로 된 인사는 나중에 할게. 넌 이 상황이 처음일 테니 말해줄 게 있어서."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여러번 끄덕였다.
"이미 얘기를 들었겠지만, 그는 총과 밧줄을 늘 가지고 있어. 그러니까 최대한 몸을 숙이고 다녀. 그의 밧줄에 당했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거든. 그래서 밧줄에 붙잡혀도 끌려가지 않도록 무게 중심이 아래로 쏠려 있어야 해."
그럴듯하고 진지한 조언인 것 같아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총을 맞지 않게 조심해."
이 말에는 경악했고.
"...뭐? 아까 그 총성이 끝이 아니란 말이야?"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켈리는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런 상황에 능숙해 보였다.
"그건 신호탄에 불과해. 총성이 들리는 날에는 돌아가는 손님 수가 하나 줄어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야."
"게다가 비연기자가 사망한 건지, 그대로 사라지는 이례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도 그가 범인일 거라는 말이 있었어."
비연기자도 죽을 수 있던가? 얼굴에 깃든 경악감이 점점 짙어지자 켈리는 내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잠깐, 너는 그를 본 적 있어? 이름을 알고 있다던가."
황급한 질문에 그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아니. 본 적이 없으니 이름 또한 알 수 없지."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해서는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직원이 NO라고 답할 거야."
이후로 다른 직원들에게도 물어보니 다들 총성이나 검은 연기 일부만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아니면 그가 다루는 밧줄에 걸리기만 하거나. 그들이 그를 찾으려고 온갖 곳을 찾아봐도 돌아오는 것은 화약내뿐이랬다. 그럼 그를 어떻게 제지해왔냐고 물었는데 이미 수많은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했고 그 뒤로는 그가 원하는 만큼을 총을 쏠 때까지 기다렸다고 했다. 무슨 이런 무식한 방법이 다 있나 싶었지만, 다행히 이런 돌발 행동은 한 달에 한 번쯤, 보통 1시간 이내에 끝난다고 했다. 수많은 시도가 어떤 것이었으며 어쩌다 실패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이미 실패라는 말에서 참혹한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가 해줄 조언은 이거야. 최대한 빨리 그를 찾을 것."
켈리가 말을 마치자마자 경쾌한 테마 음악과 함께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깜짝 이벤트로 카페와 식당에서 음료를 1잔씩 무료로 마실 기회라는 방송이 들리자 손님들은 들뜬 기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등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다급히 뛰는 내 모습과는 상반된 광경이었다.
이쯤 되면 총소리가 그렇게 들려오는데 손님들이 아무렇지 않게 있을 수 있냐는 물음이 머릿속에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총성이야 서부 테마니 그러려니 싶어도 그 이후 이어지는 잦고 불규칙한 총성은?' 하는 의문이 들지 않는가.
웃기게도,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있다. 놀이공원 측에서 총소리에 맞춰 기가 막히게 폭죽을 터트리기 때문이다. 나는 그걸 알고 나서야 지금부터 불꽃놀이를 시작하겠다는 매니저의 말을 이해했다. 밝은 낮이면 온갖 조화와 반짝이를 내뿜는 폭죽을, 어두운 저녁이면 아예 불꽃놀이를 해버린다. 반짝이는 것에 홀린 건지 아니면 무료로 제공되는 음료에 무언가가 들어간 건지 손님들은 멍하니 카페 혹은 식당 창밖의 광경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사건이 일단락되면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각자의 시간을 즐긴다.
다시 이날 일로 돌아오자면, 나는 숨이 차다 못해 심장을 내뱉을 정도로 달리며 놀이공원 구석구석을 살폈다. 말했다시피 해가 꺼지고 있을 때 첫 총성이 울렸기 때문에 10분, 20분이 흐를수록 불꽃놀이가 아름답게 보일 시간이 다가왔다.
총성이 또 한 번 울렸다. 그와 함께 하늘에는 커다란 불꽃이 수놓아졌다. 나의 두 눈에도 불꽃이 담겼다. 시야가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 차는 바람에 나 역시 손님과 다를 바 없이 넋을 놓았다. 그러나 코끝을 찌르는 화약내는 나를 한시도 가만두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매캐한 향기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검은 연기 자락이 보였다. 할리우드 테마 부근이었다. 그쪽으로 달리자 할리우드 테마로 꾸며진 거리가 나왔다. 곳곳에는 영화의 낭만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모습이 있었다. 고흐가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 같은 테라스도 보였고, 새빨간 네온사인도 있었으며 라스베이거스와 똑같이 꾸민 카지노마저 자리 잡고 있었다. 하나 같이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장소였으나 하늘 위로 끊임없이 터지는 불꽃에 비하면 전부 미미한 빛에 불과했다.
펑,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붉고 노란빛이 건물들의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발을 힘차게 내딛는 나 역시 그 순간만큼은 그림자로 존재했다. 거리의 반대편에는 셀러브리티의 등장과 동시에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를 표현하려는 듯 화려하고 밝은 전구가 깜빡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새까만 그림자가 보였다. 그였다.
나는 바로 무전기를 들어 보고했다. 이곳은 할리우드 테마 구역. 그를 찾았습니다. 내가 내는 소리를 감지한 건지 뒤를 도는 실루엣이 보였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모든 빛을 온몸으로 등지고 있었다. 빠르게 터지는 플래시가 그의 등장에 환호하는 것 같았다.
펑. 한 번 더 불꽃이 터지자, 그가 웃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손에는 총이 들려있다는 것도.
가장 가까운 매장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귀에 익은 노래였다. 가수 이름이 뭐였더라. 패닉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것만 떠올랐다. 지금 내가 그야말로 패닉이었다. 스피커는 그것도 모르고 무심하게 가수의 목소리를 출력하고 있었다.
I don't want to be afraid, the deeper that I go
It takes my breath away. Soft hearts electric souls
일정한 드럼 소리 위로 내 심장 박동이 더해졌다. 눈앞에 있는 존재를 두려워하고 싶지 않았다. 확실히 그는 내 숨을 멎게 했지만, 그것은 상냥한 마음이나 강렬한 영혼 때문이 아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미지에 대한 공포심에 가까웠다. 자꾸만 가사에 대입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자 잡념을 떨치기 위해 머리를 털려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음악에 맞추어 전구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더니 하나씩 깨져 나갔기 때문이다. 총소리로 먹먹해진 귓가에 노랫소리가 웅웅댔다.
Heart to heart and eyes to eyes. Is this taboo?
어느새 다 깨져버린 전구에는 빛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를 환호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애초에 그는 환영을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스피커는 마지막 노랫말을 내뱉더니 정적을 가져왔다. 어둠 속 고요가 숨통을 조여왔다. 나는 직감했다. 그를 찾은 지 1시간이 됐다고.
놀랍게도 그는 총을 더 쏘지 않았다. 대신 내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차. 순간적으로 떠오른 조언에 나는 재빨리 몸을 낮췄다. 그러나 그가 뻗은 것은 밧줄이 아닌 손이었다. 목탄인지 화약인지 모를 검은 것이 잔뜩 묻어있던 그의 손이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렇게 순식간에 날 자기 쪽으로 끌어가더니 총구를 내 이마에 들이밀었다. 차가운 금속이 닿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놀랍게도 그는 총을 더 쏠 수 있었다.
벌어진 그의 입술 사이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순간적으로 연기를 들이켜자 공포심이 증폭되는 것 같았다. 그제야 세 번째 주의 사항이 떠올랐다. 망할. 누가 보아도 두려움에 푹 적셔진 사람이 험한 말을 내뱉으며 인상을 찌푸리는 게 웃겼는지 그는 킬킬거렸다. 웃음소리에 자존심이 상해 나도 모르게 그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총구가 내 이마를 뒤로 밀어냈다. 곧 그는 총을 쥔 손을 거뒀다. 그가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이 생겼는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돌아가자. 지금 너 때문에 모두가 난리라고."
내 말을 듣기나 한 건지 그가 내 눈을 바라보면서도 시선이 나를 향해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무얼 보고 있는 거냐며 말하려는 찰나 내 볼 위로 손이 얹어졌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는 당황했다.
"뭐, 뭐 하는 거야?"
내 질문에도 그는 반대편 손으로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할 뿐이었다. 이어 그의 손가락이 내 볼을 두드렸다. 그것도 딱 3번. 톡, 톡, 톡.
그 순간 하늘 위로 마지막 불꽃이 솟아오르더니 놀이공원을 집어삼킬 만큼 크게 피어났다. 그가 볼을 두드린 행위는 카운트 다운이었다. 꼭 그때 폭죽이 터질 거라 계산한 것처럼. 그의 눈길은 여전히 나에게 고정되어있었다. 내가 아닌 내 눈동자에 비치는 불꽃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불꽃이 자잘하게 부서지며 그 빛을 우리 위로 흩뿌리는 것까지 마치자 나는 그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왜 총을 쐈을까. 왜 불꽃이 터지길 기다렸을까. 이대로 그가 모습을 감추면 안 될 것 같아 그를 붙잡고는 말했다.
"날 봐."
이번에는 내가 먼저 그를 보았다. 자길 보라는 말에 다시 시선이 내게 닿았다. 날 꿰뚫어 보는 눈빛에 잠시 할 말을 잃었으나 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나를 보고 말해봐. 도대체 왜 그랬던 거야? 총을 쏜 이유 말이야."
그는 눈을 굴리더니 총구로 바닥에 몇 글자를 그었다.
'JUST'
"그냥? 그냥 이 난리를 쳤다고?"
그렇게 물으니 그는 덧붙여 적어나갔다.
'FOR SOME REASON'
내가 더 뭐라 하기도 전에 그는 발로 적은 글자를 지워버리더니 이렇게 적었다.
'FIND ME?'
그러고는 나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내가 그를 찾을 것이라 예상한 것 같았다. 그에게 전할 말들이 머리에 가득했다. '당연하지. 모두가 너를 찾느라고 난리야. 네가 또 그 총을 쏘아대고 있으니까.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알아? 저 부서진 전구들 좀 봐. 지금 너 때문에 사람들은 멍청하게 불꽃놀이나 보고 있었다고.' 그런데 좀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과연 상사의 지시 때문에 움직인 걸까. 정말 고작 그것 때문에? 사실 토마토 바질 샌드위치를 다 먹지 못했었다. 먹지 않았다는 것이 맞겠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그를 찾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나를 찾았냐는 물음에는 이유를 대지 않고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니 그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웃음을 지어 보였다. 기분이 묘했다. 먹먹하게 귀를 울리던 노랫말이 떠올랐다. 마음에 마음을, 눈에 눈을 마주하는 것. 이것은 금기일까?
그는 꼭 자기가 원하던 답변을 받아낸 형사처럼 자신이 쓴 카우보이모자를 까닥였다. 다시 헤어질 시간이었다.
"아니, 이게 아니지. 야, 나랑 같이 가야 한다니까."
정신을 차리고 그렇게 말을 하자 그가 고갯짓으로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쪽에서는 인적이 느껴졌다.
"...남들에겐 보이기 싫구나?"
잠깐. 나는 남이 아니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있자 그는 또 한 번 큭큭 웃었다. 자신이 들고 있던 리볼버를 가볍게 돌리며 허리춤에 꽂고 나서야 등을 돌렸다.
"난 괜찮은 거야? 그럼 다음에는 알아서 내 앞에 나타나 줄래? 오늘 찾느라 무진장 고생했거든."
유유히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에 대고 괜히 이런저런 말들을 던졌다. 인사라도 하는 사이가 되자느니, 나도 일을 해야 된다느니, 뭐 그런.
그가 신은 부츠가 전구의 잔해들을 짓밟으며 카랑카랑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잦아들자 무전기가 치지직거리는 게 들려왔다. 아, 망했다. 저 부서진 전구가 꼭 매니저에게 깨질 내 모습 같았다.
"너 지금 어디야!"
"아까 무전 남겼잖아요. 할리우드 테마라고요."
"그래, 안 그래도 직원들을 그쪽으로 보냈어. 걘 잡았어?"
"아뇨, 놓쳤어요."
"...하. 그래, 피해는 어느 정도지?"
"음, 할리우드 테마의 조명이 깨졌어요. 조금 많이요."
"젠장... 또 수리할 기사나 불러야겠네. 됐으니까 거기 간 직원들이나 데리고 복귀해."
"네."
매니저는 많이 해탈한 듯 보였다. 나는 무전을 끊고 내게 다가오는 직원들에게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중 직원 한 명이 내게 말을 걸었다.
"카시스, 너 또 그를 본 거야?"
"보긴 했는데 잡진 못했어."
그 대답에 직원은 입술을 잘근 씹으며 무언갈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보인다. 너 등 뒤에 적힌 거 안 보여?"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설마. 나는 당장 가까운(그리고 조명이 손상되지 않은) 매장으로 달려가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비추어보았다. 등짝에는 새까만 글자가 휘갈겨져 있었다.
'YOU CAN FIND ME'
다행히 옆에 있던 사람이 잡아준 덕에 턱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그의 기행이 아직 놀라운 건 사실이지만, 점차 적응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번엔 내가 먼저 그를 보았다. 그리고 내가 먼저 그를 찾았다. 어쩌면 그는 환영을 바랐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를 찾아주길 바라는지 모른다.
매장에서 들려온 노래는 Panic! At The Disco의 House of Memories라는 노래라고 합니다. 링크 첨부했으니 들으실 분들은 들으면서 해당 파트를 읽어봐도 재밌을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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