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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로그/[레딧 괴담] 놀이공원에서 일하는데, '그'는 연기자가 아니야

[레딧 괴담] 놀이공원에서 일하는데, '그'는 연기자가 아니야 01

 


 

내 이름은 카시스고 나는 놀이공원에서 일한다.
 

 

원래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일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방학 때 떠날 여행을 위해 가볍게 돈을 벌 생각으로 일자리를 구했다.

 

 

내가 맡은 업무는 아주, 아주 단순했다. 놀이공원의 서부 테마에서 말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말을 타고 간략한 퍼포먼스를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일도 포함이었지만 그걸 고려해서라도 급여가 꽤 괜찮은 편이었다. 프레드 삼촌의 목장에서도 일해본 적이 있는지라 말을 다루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말을 다루는 일은 아주 단순한 일이다. 그러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첫날은 평범했다. 이걸 적으며 다시 떠올려보니 평범하지 않았다. 사실 거의 죽을 뻔했다. 매니저는 간략한 소개와 함께(그 소개가 너무 간략했다는 것을 이때 눈치챘어야 했다.) 내게 작업복을 주었다. 서부 테마에 걸맞게 꽤 근사한 카우보이 차림이었다. 그다음 마구간으로 데려가 나를 기다리고 있던 말들을 소개해주었다. 미리 얘기하겠다. 내가 처음 맡게 된 이들은 지극히 평범한 말이었다. 제대로 된 갈기와 말굽이 있고 힝힝거리는 소리를 내며 여물을 먹는 동물 말이다.
 
 
그렇게 제일 마음에 드는 놈의 등을 쓰다듬던 중 물통 속 물이 바닥난 것을 발견했다. 이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나는 책임감이 강한 편이라 일도 하지 않고 돈을 받아낼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물을 길어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구간의 뒤편에는 거대한 수조 탱크와 여물을 모아둔 창고가 있는데, 그곳으로 가면 손쉽게 물을 수급할 수 있었다.

 

 
금방 물을 잔뜩 채운 양동이를 든 채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부츠에 달린 금붙이가 달칵거리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점점 잘게 떨렸다. 절대로 두 손에 든 양동이가 무거워서가 아니었다. 땅이 울리고 있었다.

 

 
난 순간 지진이 일어난 건가 싶어 주춤했다. 바로 그때 진동이 멎음과 동시에 내 그림자가 비약할 정도로 커졌음을 깨달았다. 마치 거대한 괴물이 뒤에 있는 것처럼. 거친 숨소리와 함께 목덜미에 축축한 숨결이 느껴졌다. 바람결을 따라 생전 처음 맡아보는 야생적인 냄새가 났다. 커진 건 내 그림자가 아니었다. 등 뒤에 무언가가 있었다.

 

 
저 멀리서 다급하게 괴물을 부르는 소리와 직원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양동이에 든 물이라도 뿌리는 게 좋을까 싶어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등을 돌렸다. 그러자 수백, 아니 적어도 수천 개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입을 벌린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붉은 살점에 이빨을 촘촘히 박아놓은 듯한 내부는 이빨이 원형을 이루며 여러 개의 원이 안쪽으로 빼곡히 이어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하고 역겹게 생긴 웜홀과도 같아 인간의 이성으로 받아들이기엔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이제는 괴물의 입안이 만든 그림자가 온전히 내 머리 위를 드리웠다. 이빨에 엉겨있던 끈적한 침이 내 볼 위로 툭 떨어졌다. 그때 느꼈던 감각이란. 지금 생각해도 소름 돋는다. 얼어붙는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정말 말 그대로 얼어붙었다.
 

 

순간 내 허리에서 강한 압박감이 느껴졌고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휴게실 소파에 눕혀져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숨을 헐떡이며 손으로 허리를 더듬어 몸이 멀쩡한지부터 살폈다. 복부가 뻐근했지만, 다행히 어디 하나 나가떨어진 곳은 없었다.

 

 
"몸은 좀 어때? 많이 놀랐지? 이거 정말 미안하게 됐어."

 

 
문을 열고 들어온 매니저가 어색한 투로 안부를 물었다. 그러고는 지금 사람이 죽을뻔했는데 무슨 소리냐며 항의하려던 걸 눈치챈 건지 그는 다급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투스를 제지하러 갔을 때 이미 카시스 넌 자리에 없었다고 들었어. 아무튼 이렇게 휴게실에 무사히 있었다니 다행이야."

 

 
투스, 그게 괴물의 이름이었다. 몸을 일으켜 눈을 가늘게 뜨고 제대로 모든 것을 설명해달라는 눈빛으로 매니저를 쳐다봤다. 그러고 나서야 그는 제대로 내가 일하게 된 놀이공원에 관해 전부 얘기해주기 시작했다. 연기자와 비연기자에 대해서.

 

 
루스크리터 파크(Ruscreter Park). 공포 테마, 서부 테마, 할리우드 테마, 사탕 나라 테마로 나뉘는 이 놀이공원에서는 연기자인 척하는 괴물들 옆에 그들을 제어하는 연기자가 1명씩 함께한다. 페어로 일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아마 여러분 중 몇몇은 내가 일하는 놀이공원에 대해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더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놀이공원이 아니라 '그'니까.

 

 
매니저는 다신 이런 일이 없을 거라며 계속해 맡은 일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때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첫째, 그만한 급여를 주는 곳이 없었고 둘째, 나는 돈이 좋았으며 셋째, 흥미로운 것과 모험을 좋아했다. 게다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 며칠 지나면 익숙해지려니 싶었다. 여전히 난 연기자가 아닌 놀이공원의 서부 테마에서 말들을 돌보는 평범한 직원이었고 목숨만 보장된다면야 그만둘 필요가 없었다.

 

 
내가 알았다고 하자 매니저는 비밀을 보장하는 계약서를 바로 내밀었다(그걸 준비해왔다는 점이 참 철저하다). 대충 사인을 하자마자 그는 오늘은 그냥 푹 쉬고 귀가하라며 휴게실을 나갔다.

 

 
그가 휴게실을 나가는 찰나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심약해 보이는 것과 달리 제법 제멋대로 구는 매니저 놈의 태도 때문이기도 했지만, 휴게실 내에 매캐한 향이 맴돌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휴게실 불이 꺼져 있고, 창을 통해 들어온 노을빛은 오히려 휴게실 내부를 어둠으로 내몬다는 것을.

 

 
격자무늬 그림자 사이로 검은 연기가 흘러들었다.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허공에 맴돌더니 무언가 나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나는 그대로 소파에서 바닥까지 굴러떨어졌다.

 

 
어둠 속에서 옅은 갈색 눈이 하나 반짝이고 있었다. 실루엣을 보아하니 소리의 주체는 사람이었다. 고개를 꺾은 것인지 바닥에 닿던 빛이 그를 비추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반쯤 드러났다. 내가 입은 것처럼 카우보이 차림새를 한 그는 높게 올려묶은 뒷머리와 달리 앞머리로 한쪽 눈을 가리고 있었다. 어두운 머리칼과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져서일까, 어둠에 녹아들기에 적합해보였다. 날카로운 눈매 아래로는 그늘이 짙게 졌는데 그 모습이 오히려 기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저기요. 갑자기 이러는 건 매우 무례한 거 아시죠? 여기 직원이에요?"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그는 대답이 없었다.

 

 
"연기자입니까? 누구세요?"

 

 
그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누구야."

 

 
그제야 그는 입을 벌렸다.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새까만 연기가 거미줄을 치는 것처럼 가느다란 띠를 만들며 그와 내 얼굴 사이의 공간을 메우기 시작했다. 화약내가 코끝을 찔렀다. 검은 연기의 원인이 눈 앞에 있었다.

 

 
나는 침을 삼켰다. 그는 연기자가 아니었다.

 

 
내가 커진 눈으로 멍하니 보고 있자 그는 찢어질 만큼 입꼬리를 올리다 자신의 목에 손을 내리누르듯 얹었다. 그러고는 어깨를 들썩였다. 흔들리는 몸체는 무언가를 안에서 끌어내려는 것 같았다.

 

 
그는 곧 내 손을 가져가더니 손바닥에 무언가를 뱉어냈다. 총알이었다.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윽, 소리와 함께 총알을 떨구려 했지만, 그의 손이 내 손을 강하게 쥐고 있었다. 꼭 나보고 그걸 가지라는 것처럼 말이다.

 

 
난 이어지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결국 참지 못하고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스위치가 있는 쪽으로 달려가 휴게실 조명을 켰다.

 

 
그런데 어느새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있던 자리의 벽에 목탄으로 휘갈긴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PRESENT'

 

 

 

선물이라니. 나는 벌어지는 입을 애써 다물며 그 공간을 탈출하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다. 손에는 목탄 가루인지 시꺼먼 것이 묻어났다.

 

 
이 일을 당장  매니저에게 말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사무실로 달려갔다. 쾅쾅거리는 노크 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는지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문을 열자 매니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어, 더 쉬지 않아도 괜찮은 거야? 무슨 일이야?"

 

 
대답하기 위해 숨을 고르고 말했다.

 

 
"도대체 뭐에요? 왜 비연기자가 하나 더 있다고 설명해주지 않았어요? 연기자인 줄 알았잖아요."

 

 
그러자 매니저는 두 눈을 깜빡였다.
 

 

"무슨 말이야? 네게 설명해준 게 다인데."

 

 
"잠깐, 설마..."

 

 
매니저는 미간을 좁히더니 자신의 턱을 진지하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설마, 검은 연기를 본 거야? 그, 목탄으로 남긴 흔적이라거나."

 

 
그의 물음에 나는 눈을 뒤집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매니저는 입을 꾹 다무는 것도 잠시 이상하네,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혹시 그의 얼굴을 봤어?"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대답을 들은 매니저의 얼굴에는 놀람이 깃들었다. 앓는 소리를 내던 그는 책상 서랍을 뒤적였다. 그리고 금방 어떤 종이 한 장을 꺼내들었다.
 
 
"카시스, 부탁을 하나만 더 해도 될까?"
 

 

마음속에 생긴 불안감이 벌써 목구멍 아래까지 차올랐지만 어떻게든 억누르며 매니저가 하는 말을 들었다.

 

 

 

"계속 말을 번복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미안한 일은 애초에 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내가 그 카우보이를 만난 게 매니저 잘못은 아니니 뭐라 반박할 힘이 나지 않았다. 물론 내 잘못도 아니지만.
 

 

"연기자로 일해줄 수 있겠어?"
 

 

"뭐요?"
 

 

순간 얼빠진 목소리로 그렇게 되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그 검은 연기를 내뿜는 카우보이랑 함께 일하라는 건가요?"
 

 

"그래. 아마 그 녀석은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 테니 일하기 편할 거야."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내 손에 총알을 뱉어낸다는 사실을 알고도 저런 말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도 않는데 굳이 연기자를 붙일 필요가 있나요? 왜요? 여태껏 연기자와 함께하지 않았던 거잖아요, '그'는요."
 

 

말을 마치기 무섭게 매니저는 자신이 꺼냈던 종이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함께하지 않았던 게 아니야."
 

 

나의 시선이 종이를 향했다.
 

 

"함께하지 못했던 거지."
 

 

그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1. 화약내가 나면 즉시 그 자리에서 벗어날 것.
  2. 총성이 울릴 시 모든 직원은 협조할 것.
  3. 입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를 들이켜지 말 것.
  4. 탄환이 입에서 나와도 당황하지 말 것.
  5. 혀 밑에 총알을 숨겼는지 볼 것. 그렇지 않았음에도 총알을 뱉어낸다면 가슴팍을 확인할 것.
  6. 밧줄이 걸리는 일이 없게 사방을 수시로 살필 것.
  7. 목탄으로 남긴 흔적을 무시하지 말 것.
  8. 건물 그림자를 수시로 살필 것.
  9. 그 외 어둠에 들어가지 말 것.
  10. 비상식적인 행동을 많이 하므로 주의하고 사람 같은 외관에 직원과 혼동하지 말 것.
  이것은 절대로 목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종이에 적힌 경고와 같은 안내문을 빠르게 훑어 내려간 나는 침을 삼켰다. 매니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는 위험한 놈이야. 통제가 불가능한."
 

 

그는 점점 더 목소리를 낮추었다. 마치 괴담을 이야기하는 듯한 서늘한 어조였다.
 

 

"왜 더 위험한지 알아? 우리 시야에서 늘 벗어나 있거든."
 

 

"그를 보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소리야."
 

 

매니저는 자신의 양손을 겹친 채 기울였던 몸을 다시 뒤로 내뺐다.
 

 

"카시스, 네가 그의 얼굴을 봤다는 건 어쩌면 이 일에 아주 적합하다는 의미일지도 몰라."
 

 

"이렇게 부탁할게. 그를 감시만이라도 해줘. 제지해주면 더 좋지만, 네 목숨을 걸라고는 안 해. 급여도 훨씬 높게 쳐줄 테니까..."
 

 

그 말에는 간절함마저 섞여 있었다. 이때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 분명 그랬다. 그렇지만 첫째, 그만한 급여를 주는 곳이 없었고 둘째, 나는 돈이 필요했으며 셋째, 흥미로운 것과 모험을 좋아했다. 게다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 며칠 지나면 익숙해지려니 싶었다. 아마도. 이건 적응이 될까 싶었지만. 이미 난 놀이공원의 서부 테마에서 말들을 돌보는 평범한 직원이 아닌 연기자였으나 목숨만 보장된다면야 그만둘 필요가... 젠장! 난 책임감이 강하다. 그것도 너무 강하다. 자꾸만 그 검은 연기와 매캐한 향이 떠올랐던 걸 보면.
 

 

다시 말하자면 말을 다루는 일은 아주 단순한 일이다. 내가 다루게 된 것이 말이 아닌 '그'였다는 게 문제지만.
 

 

그렇게 나는 '그'를 전담하는 연기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