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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x/러닝 로그

구원의 시기(時機)

녹스는 대접을 한다면서 자신의 입으로 코코넛을 밀어넣는 신부를, 아니 줄리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신부라기엔 엄중하지 않고, 해적이라기엔 신의 이름을-특히 사랑을-자주 입에 담는 그를 보고 있자면 녹스는 항상 반발심이 들었다. 그것은 운명이라던가 신이라던가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은 것들을 믿지 않으려는 그의 어쩔 수 없는 성향이기도 했다.

 

“내가 스스로를 구하려는 모습이 보기 좋다니, 가만 보면 신부님은 날 참 좋아해. 아니, 모두를 좋아하는 것이겠지만.”

 

신부는 죄인들의 죄를, 그리고 낮은 자들의 죄를 대신해 짊어진다고 하였던가. 녹스의 눈에 줄리오는 우리 모두의 죄를 짊어진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을 스스로 짊어지려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면서 화약 냄새가 좋다고 하는 신부님이라니. 그럼에도 녹스는 모순적인 신부가 밉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바다가 아닌 육지를 밟게 된다면 꼭 그쪽 고향에 방문해보도록 하지. 그때 당신도 그곳에 있을진 모르지만. 우리가 딱히 서로를 만나려 그곳에 갈 일을 없을 테니까.”

 

안 그래? 그렇게 되묻던 그는 이제는 비어버린 브랜디 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유리 부딪히는 소리가 제법 경쾌한 음을 내며 공간에 울려 퍼졌다. 그에 맞춰 녹스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당신이 그곳으로 돌아갔을 때 만약 화약내가 수도원을 등에 업은 절벽을 타고 내려간다면, 그리고 장미 나무와 꽃들 사이로 검은 연기같이 휘날리는 머리카락이 눈에 보인다면… 이렇게 생각해. 내가 거기 있는 것이라고. 어쩌면 그 젊은이들의 한숨에는 나의 웃음소리가 섞여 있을지도 모르지.”

 

녹스는 화약내가 싫으면서 좋고, 좋으면서 싫었다. 토할 만큼 지겨웠지만, 눈을 뜨이게 하는 데에는 또 그만큼 코를 찌르는 냄새가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 그는 화기에 미친 놈이었고 미친 것이 맞았으나 힘과 권력을 향한 야망은 언젠가 그를 잡아먹을 것이 뻔했다. 그리고 녹스 본인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총성은 늘 그랬듯이 멈추지 않았다. 사람의 가슴과 머리를 뚫는 탄환, 그리고 선체의 중심과 뱃머리를 뚫는 포환 속에서 사랑이 존재할 수 있나? 이에 대한 그의 답은 ‘아니.’였다.

 

“나의 집은 바다라고? 이미 내게 구원이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고?”

 

이에 대한 대답 역시 ‘아니.’였다.

 

“바다는 나의 집이 아니야. 나는 집이 없어. 하지만 그래, 줄리오…. 네 말이 맞아. 바다에선 혼자 살아남을 수 없고, 나에게 평범한 사랑은 어울리지 않지. 또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여서 나에게 아주 작은 구원이, 작아서 보이지 않더라도 있을 수 있어.”

 

“그렇지만 그 구원의 시기가 지금은 아닌 것 같아.”

 

녹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끝에는 왠지 모를 슬픔이 걸려 있었지만 갈색 눈동자 안에는 여전히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다. 언제 타서 소멸할지 모르는 불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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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2021.07.21